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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작 뉴턴] 진리에 대한 왕성한 호기심으로 이뤄낸 삶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9-18 오후 3:37:51
이메일 unit324@suwonmental.org 조회수 444

아이작 뉴턴의 호기심

진리에 대한 왕성한 호기심으로 고전역학과 미적분학을 완성한 아이작 뉴턴

 

 

 


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면?

이 단순한 현상에 대해 의문을 품은 사람이 있습니다.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품은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 20여 년간 연구에 몰입한 끝에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아이작 뉴턴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오늘은 사과에서 시작된 의문으로 관성의 법칙, 운동 방정식의 법칙, 작용/반작용의 법칙 등을 발견한 아이작 뉴턴의 삶에 대해 이야기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이작 뉴턴(이하 뉴턴)이 사과나무 밑에 앉아 떨어지는 사과를 보며 과학을 연구했다고 하니, 왠지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집에서 가족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랐을 것 같은 느낌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예상과는 반대로, 뉴턴은 어릴 적부터 외롭게 자랐습니다.

뉴턴의 어머니가 그가 태어난 지 2년 만에 재가해서 곁을 떠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뉴턴은 자신과 함께 살기를 원하지 않았던 의붓아버지에게 반감을, 그리고 자신을 버린 어머니에게는 엄청난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이는 “새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그들의 집을 불태우고 싶었다” 라는 그의 회고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뉴턴은 어릴 적부터 모든 아픔과 외로움을 오롯이 혼자서 감당해야 했습니다.

 


유년 시절에는 애착관계가 매우 중요하다고 합니다.

뉴턴은 이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논문을 발표할 때 마다 심리적 불안감을 표하고, 자신에게 향해지는 비판에 대해 지나치게 반발하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는 어렸을 때 경험한 모성결핍에서 기인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학창시절에는 어땠을까요?

다행히도, 학창시절에는 학업에만 열중한 덕분에 모성결핍으로 인한 불안을 크게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다만, 타인과의 교류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학업에만 광적으로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을 뿐입니다.

 


뉴턴은 우연히 접하게 된 데카르트를 통해 우주의 모든 물리적 현상을 운동과 물질로 설명하려는 기계적 철학에 매료되었습니다. 그리하여 1664년경부터 <몇 가지 철학적 문제들>을 기록하면서 과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됩니다.

 


과학뿐만 아니라 수학도 함께 연구했습니다. 데카르트의 <기하학>에서 대수적인 기법을 기하학에 적용하는 법을 배워 고전기하학도 깊게 공부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항정리를 발견하고 미적분학도 개발하였습니다. 1669년까지는 그동안의 성과를 종합하여 <무한급수에 의한 해석학에 관하여>를 펴낼 정도로 발전했습니다.

 


1671년에는 반사망원경을 발명하여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리고, 1672년에는 빛과 색깔에 관한 논문을 학회에 제출하여 유명해 집니다. 과학자로서 승승장구 한 삶을 산 것이지요.

 

그러나 마냥 좋은 일만 있다면, 우리에게 교훈을 주는 정신건강위인이 될 수 없지요

앞서, 뉴턴이 자신에게 향해지는 비판에 대해 지나치게 반발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말씀드렸어요.

 


1672년에 뉴턴이 한 논문을 발표하게 되는데, 이 논문으로 학회 지도자였던 로버트 훅과의 마찰이 생깁니다.

뉴턴은 훅의 신랄한 비판에 격노하여 외부와의 관계를 끊고 고립된 생활을 자처합니다.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사회로 나올 때쯤, 또 다시 훅과의 악연이 시작됩니다.

3년 뒤에 뉴턴이 발표한 논문을 두고 훅이 자신의 생각을 도용했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또 영국의 한 예수교 분파도 이 논문의 내용을 공격합니다.

 


1675년에 시작된 이 싸움은 1678년까지 계속됩니다. 이로 인해 뉴턴은 신경쇠약을 동반한 발작을 하게 됩니다.

기나긴 싸움에 지친 것이지요. 이로 인해 뉴턴은 외부와 완전히 격리된 삶을 자처합니다.

 


이처럼 타인의 비판에 지나친 반응을 보이고, 사회와의 교류를 차단한 뉴턴의 성향은 어린 시절에 그가 어머니에게 느꼈던 배신감, 그리고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생각들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와 형성하지 못한 신뢰관계가 이후 뉴턴의 사회생활에서 타인에 대한 불신만을 가득하게 만든 것입니다.

 

 


또한 ‘나는 사랑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가’에 대한 해답, 자신의 가치에 대한 해답을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찾지 못했기 때문에 평생 뉴턴은 낮은 자존감 속에서 살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낮은 자존감을 극복하기 위해 연구 업적을 모두 자기에 유리하게 만들고, 자신의 성과에 조금이라도 위협이 될 것 같은 과학자들의 비평에 유난히 예민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뉴턴의 몸과 마음을 지치게 만든 그의 주변환경들도 그의 호기심까지 꺾지는 못했나 봅니다.


뉴턴은 격리기간 동안 평소 느꼈던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연금술을 공부했습니다. 또, 광학에 대한 실험 중에 눈에 압력이 가해지면 어떻게 되는지가 너무나도 궁금하여 직접 자기의 눈을 찔렀을 정도로 궁금한 것을 참을 수 없어하며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와 같은 뉴턴의 멈추지 않는 호기심과 학업에 대한 열정 덕분에 영국 과학의 대부가 되고, 1703년에는 왕립학회 회장으로도 선출됩니다. 그리고 1705년에 과학자로서는 최초로 기사작위까지 받게 됩니다.


어린 시절 자신을 버린 어머니로부터 받은 상처와 이로 인해 생긴 비판에 대한 두려움을 학업에 대한 호기심으로 극복해 내어 이처럼 위대한 업적을 남기게 된 것입니다.

 

유명한 사과 일화로도 알 수 있듯이, 보통사람이라면 당연하게 여기거나 무심코 지나쳤을 상황에서도 뉴턴은 남다른 관찰력과 호기심을 보였습니다.

 

이와 같은 호기심이 있었기에 뉴턴이 현재까지도 역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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